'자연농 느림과 기다림의 철학' 이라는 책이다. 

책의 제목에 느림, 기다림, 철학 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자연농을  느림과 기다림의 철학으로 정의 하는 방식이다. 


농사는 어렵다. 유기농은 더 어렵다. 자연농을 더욱 더 어렵다. 

사실 자연적인 상태에서의 산출이 부족하기 때문에 사람이 인위적으로 경작을 시작했다. 


자연농이라고 해서 완전히 자연상태로 방치할수는 없다. 씨를 뿌리는 위치를 선정해야 하고, 물이 부족하면 물을 줘야 하고, 땅의 지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녹비작물을 심기도하고, 풀이 자라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가끔씩은 풀을 잘라서 멀칭을 해줄필요도 있다. 

관행농이던, 유기농이던, 자연농이던, 사람의 간섭은 필요할수 밖에 없다. 


'자연농, 느림과 기다림의 철학'을 가진 보통의 농산물이 아니기 때문에 가격이 엄청 비쌀수도 있다. 


작물을 질소를 먹는다. 두가지 형태로, 화학비료로 주던지, 유기비료로 주던지, 혹은 퇴비로 주던지, 아니면 땅속에 자연그대로의 영양을 먹던지, 작물은 동일한 질산태질소와 암모니아태 질소를 먹는다. 어떤 형식이든 상관없이 두가지 형태로 변하지 않으면 작물은 먹지 못한다. 


영양(질소, 인산, 칼리, 칼슘, 마그네슘 등등...)을 어떤한 방식으로 공급하느냐에 따라서 관행농, 유기농, 자연농으로 나뉘기도 한다.


삶은 철학을 가져야 하는가? 철학을 가지고 농사를 지어야 하는가?

오히려 그게 의미라는 개념에 감옥에 갖히는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본다. 


관행농보다 유기농이 유기농보다 자연농이 몸에 좋을것 같다. 좋은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이 건강하듯, 좋은 환경에서 자라난 작물의 영양이 더욱 좋고, 맛이 더욱 좋다. 

(지금 사과 10개의 영양이, 50년전 사과 1개의 영양과 거의 같다고 한다.)


우리는 자연과 가까운 것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한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 의미는 목적을 가진다. 


나의 의미적 만족을 찾기위해서 기르는 작물이있다.

단지 내가 좋아 하는 사람에게 주기 위해서 기르는 작물이 있다. 


나는 단지 자신이 좋아 하는 사람에게 주기위해서 기른 채소를 먹고 싶다.

그게 자연농이던, 관행농이던, 유기농이던 상관없이...




 

Posted by 작은변화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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